본문 바로가기
낙서장/[24- ] 어쩌다보니 대학원생

[240802] 내가 하고 싶은 게 뭘까

by jae_walker 2024. 8. 2.

요즘 하는 일이 다 무의미하고 공허하게 느껴진다.
그렇다고 막 왜 살지, 사는 게 다 의미없다 이런건 아니고ㅋㅋ
그냥... 난 지금 뭘 하고 있지 --> 왜 하고 있지 --> 뭘 하고 싶지 --> 뭘 해야 하지 의 수레바퀴를 삥글삥글 도는 느낌이랄까...
 
뭐 여러가지 상황이 겹치기도 했고 지금 내가 인생의 전환점 비슷한 걸 지나고 있어서 생각이 복잡해질 수도 있을 거 같긴 한데, 쨋든 내가 왜 이런 마음이 들까 궁금해서 곰곰히 지켜보니 "마음 쏟을 대상이 없어졌다"는 게 가장 큰 이유라는 결론을 내렸다.
 
나는 지금 마음 쏟을 곳이 없다.
전념하고 헌신하고 싶은 대상을 잃었다.
 
아니 근데 그렇다고 이렇게나 삶이 공허해질 일인가. 그럼 그냥 너가 좋아하는게 뭔데 라고 물어보니.. 대답을... 못하겠다.... 이게 진짜 충격이었다. 아니 지금 내가 뭐가 하고 싶은지를 모른다고? 난 분명 지금까지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 적어도 평균보다는 더 많이 생각해보고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 오히려 내가 세워놓은 뚜렷한 자아상과 내적동기, 기호 따위에 자부심 비스무리한걸 가지고 살던 사람이었는데... 진짜 그냥 내가 하고 싶은게 뭘까 떠올리는데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농구?

내가 진짜 농구를 좋아하는 걸까. 아니면 '우와 여자가 농구를 해? 신기하다!'라는 사람들의 반응, 그리고 나서 나에게 씌워지는 '활발하고 도전적이고 당찬 여성'이라는 어떤 프레임을 좋아했던 걸까. 솔직하게 생각해보니 후자인 것 같다. 사실 이런 반응과 프레임으로 얻는 이런저런 실질적인 이익도 많기도 했다. 이 이야기를 영주에게 했더니 너가 그저 그런 껍데기만 좋아했던 건 아닐거라고, 농구라는 행위 자체가 좋지 않으면 이렇게 오랫동안 안했을거라고. 그냥 지금은 내 상황에 불만이어서 그런거라고.
 
어쨋든 그래서 이번 달부터는 농구도 잠시 쉬어가겠다고 했다. 이렇게 나라고 생각하고 덕지덕지 붙여놓았던 것들을 다 벗겨내고 나면 뭐가 남을까.
 


 
회사는 왜 열심히 다녔을까.
 
내가 하는 일을 좋아했던 걸까. 유능해보이고 인정받는 나의 모습을 갈망했던 걸까. 누군가의 일을 더 잘되게 돕고 싶은 마음이었을까. 이 모든게 뒤섞여있었던 걸까. 정말 일 그 자체가 좋았던 거면 대학원에 와서 이렇게까지 손놓고 앉아 있을만큼 공허하지는 않았을텐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꽤 명확한 회사생활의 동력이 2가지 정도 있었던 것 같은데, 첫 번째는 나에게 주어진 미션을 아주 끝내주게 풀고 싶다는 욕망. 두 번째는 같은 생각과 목표를 공유하는 사람들과 상호작용 하는 것에 대한 재미.
 
아, 대학원이 재미없는 이유를 찾았다.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이 없다. 함께 하고 싶은 사람, 돕고 싶은 사람, 이해받고 이해해주고 싶은 사람이 없다. 내가 이렇게나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었구나. 그래서 나는 내적동기가 없는 사람이라고 느꼈나보다. 마음 쏟을 대상을 나 오롯이 혼자 이루고 싶은 목표라고 생각하고 찾으려고 하니 아무것도 안보이는거다. 내가 필요한 건 마음을 나눌 '사람'이었다.
 


 
맞네. 농구가 좋아진 것도 결국 농구가 나에게 사람들을 데려왔기 때문이었다. 중학교 때 수학학원 다니면서 가장 좋아했던 친구 승희도 나랑 같이 농구라는 정체성을 공유하는 친구였고, 대학교 때 과 생활보다도 더 열심히 했던 농구동아리에서도 인생을 함께 겪어 나가는 소중한 친구들을 만났다. 농구 동호회를 잘 해봐야겠다고 결심했던 것도 농구가 재밌다는 생각보다는 여기서 만나는 사람들이 너무 좋아서가 더 컸다.
 
회사도 그랬다. 내 인생의 멘토로 삼을만한 선배를 만나고, 같은 일을 하면서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고민들을 하는 동기들을 만났다. 그들과 함께 우리에게 주어진 미션을 풀어나가고, 고생했다며 술잔을 기울이는 그 시간들이 좋았던 거다. 그게 개발이던 해외업무던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였다.
 


 
그런 내가 갑자기 대학원이란 곳을, 이 일이 좋다고 착각하고 와버린거다. 아니지 솔직하자. 사실 이 일에 대한 욕심은 부차적인 이유였고, 박사하고 온 멘토의 능력이 멋있어 보였고 닮고 싶었고, 일을 잘 한다는 소리를 들으니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이 생겼고, 그럼 이거 좀 더 잘 해볼까하고 대학원을 가야겠다 싶었던 거지. 그렇게 내가 주변에 만들어 놓았던 소중한 사람들을 두고 이 곳에 혼자 툭 떨어진거다. 그렇게 사람들을 벗겨내고 보니 난 아무것도 아니였고, 내 열정과 재미도 아무것도 아니였다. 그냥 외롭고 뭘 위해서 이걸 해야하는 지 모르겠는 방황하는 대학원생만 우두커니 남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