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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장/[24- ] 어쩌다보니 대학원생

[요가일기] 요가원 첫 특강! 남은 건 물음표 백만개

by jae_walker 2024. 7. 27.

요가원에서 '파탄잘리의 8단계 요가'라는 주제로 열리는 특강에 참여했다.
 
수업 후 선생님과 짧게 짧게 나누던 이야기들을 조금 더 길고 깊은 호흡으로 나눌 수 있는 시간이 될 것 같아서 기대하고 갔는데,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좋은 시간이었고 재밌는 생각거리들을 많이 던져주는 시간이었다. 게다가 함께 하신 요가원 회원님(이라고 쓰기에는 뭔가 내적 유대감 같은 게 생겨버려서 회원이라는 단어가 미묘하게 정없게 느껴지는데 대체할 만 한 적절한 단어는 안떠오름;;ㅋㅋ)들의 바이브가 너무 좋아서 그 안에서 함께 에너지를 나눌 수 있음에 감사한 시간이었다.
 
사실 처음 한 시간 정도까지는 가벼운 마음으로 선생님 이야기를 재밌게 잘 따라갔는데, 시간이 지나고 하나 둘 새로운 주제들이 등장하니까 그때마다 물음표들이 머릿 속을 가득 채워서 당황스러웠다. 선생님 목소리를 따라가고 싶은데 자꾸만 이 물음표들이 뒤에서 나를 붙잡아서 이놈들을 떼어 놓고 다시 호다닥 따라가고 다시 뒤쳐지고를 반복하는 느낌..? 중간중간 질문하고 싶은 것들이 많았는데 이걸 다 여쭤봤다가는 오늘 안에 세미나가 안 끝날 것 같아서 꾹 참았음ㅋㅋ
 
그래서 오늘 다뤘던 내용들을 중에 기억에 남는 내용들, 나의 생각들, 궁금증들을 잊어버리기 전에 여기에 잘 정리해놨다가 틈틈히 선생님이랑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1. 요가는 모든 것에 대한 답이 되는 것 같다가도, 그 어떤 것에도 답을 주지 않는 것 같다! 어렵다...!
- 내가 오늘 수업 후반부에서 혼란스러웠던 이유인데, 어떤 개념이 하나씩 등장할 때마다 이게 모든 질문에 대한 대답, 여러 현상을 관통하는 원리가 되는 것 같다가도 내 삶의 고민들에 대입해보면 여전히 그 어떤 것에도 명확한 답을 주지 않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니면 답을 알고 있으면서도 내가 무의식중에 거부하고 있는 걸수도...
 
예를 들어, 1단계 야마에서 나오는 사트야(satya)는 진실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데, 그럼 어떤 것을 진실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불변의 진리를 말할 때는 고민할 필요가 없다. 명확한 것이니까. 반대로 악의를 가지고 하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도 그다지 어렵지 않다. 명백히 나쁜 것임을 바로 알아차리고 멈추기 쉬우니까. 그런데 사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어렵고 고민하고 서로 본의 아니게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것들은 이렇게 명백히 좋고 나쁨이 구분되는 것들이 아니라 그 사이 어딘가 애매한 구간에 있는 것들이다. 내가 지금 진실이라고 믿는 것들도 결국 나의 판단과 해석에 따라 언제든지 변할 수 있는 어떤 상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진짜 진실인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것 보다는 선의의 여부가 더 중요한가? 이런 이야기에 항상 등장하는 '착한 거짓말'도, 어느 정도까지의 선의가 있어야 거짓말이 착해질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자면 애매하다. 그렇다고 그냥 아무말도 안하고 침묵하는 선택을 하자니 사실을 숨기는 것 같아 다시 거짓말이 되는 것 같다. (여기에서 '기대'라는 마음에 대한 궁금증으로 이어졌는데 이건 뒤에서 따로 정리...) 
 
이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이 아빠리그라하(aparigraha, 무소유)가 나오면 몇 개 추가되고, 브라흐마차르야(brahmacarya, 욕구제어)가 나오면 또 추가되고... 이러다보니 끝날 때 쯤에는 머릿 속이 온통 물음표로 가득차는 느낌이었다. 뭔가를 배우고 있는데 알게 되는 것보다 모르는 게 더 많아지는 이 기분. 학교에서 말고 다른 곳에서 느끼고 싶지는 않았는데...

혼돈의 카오스에 빠져버린 요가 뉴비1

 
인공위성에서 지구를 볼 때는 그 안에서 살아가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모습을 다 들여다볼 수 없는 것처럼, 모든 것을 아우를 수 있는 원리를 만들어 내려면 필연적으로 세부적인 모든 내용은 날아갈 수 밖에 없고, 그걸 각자 알아서 하나씩 채워 넣는 과정이 요가 공부인건가 싶기도 하다. 그래서 이 몇천년된 요가를 그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 하는 건가보지...허허... 아닌가 자꾸 더 엄밀하고 정확하게 무언가를 정의하고 싶은 것 또한 집착의 한 형태인건가. 모든 변수에 대한 상관관계를 정의하는 방정식에 세상을 담아내고 어떻게든 반례를 찾아내고 싶은 공대생의 집착..ㅋㅋ 나는 이런 혼란스러움과 의문들을 어떻게 지혜롭게 다루고 받아들이고 소화해야 할까.
 
 
 
2. Buddhi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건가요. 좋은 buddhi와 나쁜 buddhi가 있나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아에 따라 자연스럽게 발현되는 컨트롤할 수 없는 것에 가까운가요, 공부하고 갈고 닦을 수 있나요?
 
- 이건 다음 시간에 답을 얻을 수 있기를 기대하며 패스.
 
 
3. '기대'라는 마음을 어떻게 다뤄야할까?
- 야마(Yama, 금계)의 5가지를 이야기하는 시간에서 자꾸 떠오르는 단어. 기대. 정확한 정의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바라는 어떤 모습이나 기준 같은 걸 만들어 놓고 그렇게 되었으면 하는 마음' 정도로 표현하면 좋을 것 같다.
 
나 자신에게, 혹은 다른 누군가에게 어떤 기대를 한다는 것은 그 의도와 표현 방법에 따라 정말 다양한 모습이 되는 것 같은데, 명확하게 금계에 걸릴만한 상황들은 일단 제외해보자. 예를 들면, 나의 이익만을 위해서 상대의 의사와 관계없이 누군가에게 어떤 것을 기대하는 것, 더 나아가 그걸 해주기를 강요하는 행위까지 이어지는 것은 명확하게 아힘사(ahimsa, 비폭력)에 위배될 것이다. 상대방이 나를 사랑해주기를 지나치게 원하는 것 또한 내 것이 아닌 그 이상을 탐하는 마음이고 이를 제어하지 못하는 것은 브라흐마차르야(욕구제어)를 못 하는 것이다. (그럼 사람의 마음을 훔치는 것은 asteya 위반인가요...?ㅋㅋ)
 
근데 말이죠. 그럼 이건요? '네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 '우리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
언뜻보면 나쁠 거 없어 보이는데, 생각보다 이게 내 마음을, 그리고 누군가의 마음을 힘들게 하는 일이 많았다구요...ㅠㅠ
 
기대는 대상에 대한 애정과 관심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애초에 그런 게 없다면 무언가를 바라지도 않을 테니까 말이다. 그래서 언젠가 남자친구한테 약간 서운해하면서 말한 적도 있다. 너는 나에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것 같다고. 지금 돌아보면 오히려 그게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려는 상당히 높은 차원의 노력이었는데 나에게는 그게 거리감으로 느껴졌던 것 같다. 어떤 두 사람이 '관계'라는 속성을 지속해나가려면 그 둘 사이를 연결시켜주는 끈 같은 게 있어야 할텐데 그게 서로에게 거는 기대가 아닐까. 어쩌면 어느 정도는 서로에 역할을 부여하고 그에 상응하는 무언가를 기대하고 욕구를 투영하고 또 서로 그 기대를 충족시켜주면서 고마워하고의 상호작용을 반복하며 관계를 더 오밀조밀하게 짜나가는 게 아닐까. 서로에 대한 기대가 없다면 나는 이 관계를 통해서 어떤 것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것일까. 나는 널 사랑하지만 너는 날 사랑하지 않아도 괜찮아. 나는 너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니까 너의 그 어떤 모습도 내버려둘 수 있어. 이게 맞는걸까. 아니 가능하기는 한 걸까.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서로에게 아무런 종속성을 가지지 않는 대답 없는 메아리 같은 관계라는 게 지속될 수는 있는 걸까. 그냥 저 멀리서 누군가를 제3자로서 관찰하는 거랑 뭐가 다른걸까. 아니 애초에 너는 나의 '어떤' 것을 '왜' 사랑하는건데? 자신을 온전히 내맡긴다는 헌신의 박띠 요가도요. 결국 자기 초월의 상태를 기대하고 하는 행위 아니냐고요.
 
그니까 이 기대가 결국 뭔가를 더 좋게 하고 싶은 거고 그리 나쁜놈은 아닌 거 같은데 그래서 기대를 하다보면 또 야마에 자꾸 걸릴 거 같단 말이죠. 가끔 내 기대와 다르게 행동하면 쟤는 왜저러나 나는 왜이러나라고 마음 속으로 생각하며 아힘사 옐로우카드를 받고, 그런 마음을 숨기면서 괜찮은 척하면 삐빅 사트야 옐로우카드. 아니 그리고 애초에 기대라는 게 내 것이 아닌 그 이상을 탐하는 거 아닌가? 그럼 시작부터 이미 아스테야 위반이고 욕구제어 위반임. 무슨 바늘 위에 공 세우기 하는 것 같네, 아무리 공들여도 무조건 어느 쪽으로든 쓰러지는...
 
그럼 도대체 어떻게 해야하는 거죠?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으려고 하니 의미를 잃어버리는 것 같고, 그렇다고 기대하기 시작하면 번뇌가 찾아오는데요...ㅠㅠ
 
기대를 가진다. --> Okay.
기대가 충족된다 --> Good!
기대가 충족되지 않는다 --> 고통받는다 --> No!
                                    --> 그럼 그러려니 한다 --> Good? but what's next?

 
 
5.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나에게 계속 살아갈 이유를 부여해주는 것은 무엇인가?
- 아파리그라하, 무소유는 최소한의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 이외에는 욕심내지 않고 애착을 가지지 않는 것을 말한다. 그럼 이제 또 살아가는 데 최소한으로 필요한 것들이 어디까지인지가 궁금해진다. 누군가에게는 먹고 자고 따뜻하게 입을 수 있는 최소 조건만 갖춰지면 사는데 충분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성취, 사랑, 호기심과 같은 것들도 내 삶을 살아가는 데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내가 앞으로 그 어떤 것도 성취할 수 없다면, 그 누구를 사랑하지도 사랑받지도 못한다면, 그 어떤 것에도 관심과 호기심을 느끼지 않는다면 나는 무엇을 위해서 삶을 지속해야 하는가(굳이 지속하지 않을 이유는 또 뭔가 싶긴 하네...ㅋㅋ) 최소한의 근본욕구만을 남겨 놓은 삶은 무슨 의미를 가지는가. 
 
암튼 그럼 자비를 베풀어서^-^ 이런 것들까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최소한 것들 리스트에 껴준다고 해보자. 그럼 이제 또 브라흐마차르야(brahmacarya, 욕구제어)에 대한 고민이 시작된다. 성취, 사랑, 배움 같은 것들이 삶의 건강한 동기였다가도 한순간에 나의 마음을 힘들게 하는 대상이 되어버리기도 하는 걸 우리는 이미 많이 경험해봤다. 그럼 이걸 얼마나, 어떻게 제어해야하는 걸까?
 
나에게 성취와 인정욕구는 굉장히 중요한 자기보존의 욕구 중 하나에 해당하는 것 같은데, 문제는 얘네들이 나에게 필연적으로 노력, 그리고 그에 따르는 마음의 격동을 가져오는 것 같다는 거다. 지금 나에게 없는 무언가를 만들어내려는데 그게 그렇게 쉽게 될 리가 없다. 나의 첫 회사생활을 돌이켜봐도, 4년중에 반은 매일매일 자괴감과 싸웠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의 내가 원망스럽고, 나보다 잘하는 동기를 보면 부럽고, 잘 안 풀리는 문제를 붙잡고 낑낑대는 것도 고통스러웠다. 근데 성취와 인정욕구에 대한 집착 덕분에(?) 그냥 어떻게든 버티고 무너지고 일어나고를 반복하다보니 나중에 되어서는 이게 조금씩 되네 하는 순간이 왔고, 그동안의 고통이 어느 순간 행복과 만족감으로 바뀌었다. 그러니 내가 그 격동의 시간을 억지로 붙잡고 버텨낸 만큼 행복이나 만족감 그리고 더 발전한 '나'의 존재로 보상받을 수 있다면 해볼만한 게임이 아닌가 싶은거다. 왜 굳이 괴로움을 멀리해야하는 거지? 고통을 더 큰 행복을 위해 지불해야되는 대가라고 생각하면 안되나? 그리고 그 기억을 바탕으로 다시 더 나은 나를 성취하기를 기대하며 고통을 기꺼이 받아들인다면? 그건 자기학대일까? 건강한 삶의 동기부여 방식일까?
 
그리고 결국 이게 다 비슷비슷한 질문들과 이어지는데...
 
 
 
6. 자기만족과 자기발전을 공존할 수 있는가? 내가 대학원의 삶에 동력을 잃은 이유는 무엇인가?
- 니야마(Niyama, 권계) 중에 산토자(santosa, 만족)가 있다. 지금 가지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지려 하지 않는 마음가짐을 뜻한다. 사실 딱 지금의 내 상태이다. 모든 게 만족스럽다. 먹고 입고 자고 삶을 즐기는 데 부족함 없는 환경과, 가끔은 티격태격해도 사이 좋은 가족, (얼마전까지만 해도 만족스러웠던 전) 남자친구와의 관계, 나에 대해 100% 만족한다고는 볼 수 없지만 그래도 어디가서 이 정도면 나는 좋은 사람이지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자아상, 학술연수 오는 순간부터 풀충전된 나의 인정욕구까지.
 
근데 그래서 그런지 현재 대학원 생활에 별로 애정과 욕심이 안생긴다. 이전처럼 교수님이나 동료들한테 인정받고 싶어 애쓰지도 않고, 연구가 잘 될 때는 오 오늘 논문 좀 잘 읽히네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게 그 행위를 지속하고자 하는 동력이 될만큼의 성취감을 불러오지도 않는다. 논문이 도저히 눈에 안들어오는 날에도 그냥 오늘은 공부가 안되는 날인가보다 한다. 이러다보니 나에게 왜 굳이 학위가 필요하지 라는 생각이 든다. 있으면 좋겠지만 없어도 문제 없고. 되는 대로 해서 되면 좋은 거고, 되는 대로 해서 안 될 것 같아도 굳이 애를 쓸 필요도 없다. 기대하는 바가 없어서 고통도 행복도 없는 딱 그 상태다. 근데 뭔가 정체되어 있는 느낌이다.
 
영주는 반대로 하루하루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다(ㅋㅋ) 실험결과가 의도한대로 나오지 않아서 받는 스트레스, 교수님께 아낌없이 받는 기대와 갈굼, 매일매일 주어지는 수많은 미션들을 모두 짊어지고도 ㅅㅂ 어떻게 그래도 해야지ㅠㅠ하면서 눈물닦아가며 하고 있는 건데 옆에서 보면 너무 힘들어보여 안쓰럽다가도 몬가 실시간으로 성장하고 있는거 같아서 그래도 잘하고 있다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오 그리고 때마침 방금 막 카톡을 받았는데 지금까지 결과가 안나와서 개고생하던 실험을 성공했댄다. (저게 무슨 마음인지 너무 잘 알겠어서 막 같이 눈물이 날 것 같네...ㅠㅠ)


 
암튼 이런 걸 보면 자기만족과 자기발전이 공존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기고, 그게 다시 삶의 동기부여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단순히 대학원이 나의 어떤 순수한 내적 동기를 불러 일으키지 못하는 대상이어서 집중하지 못하는 걸까. 그럼 다른 길을 찾아야하는 걸까? 크게 기대하는 게 없다면 뭘 하던지 다 똑같지 않을까? 그렇다면 동기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난 이것에 어떤 의미, 욕구, 기대를 부여해야할까? 애착 없이 '그냥' 어떤 행위를 지속할 수가 있나? 물이 위(기대) 아래(지금 내상태)가 없으면 흐르지 않는데 물레바퀴를 어떻게 돌릴 수 있는 걸까?
 
 
 
7. 해탈을 꼭 해야되나..? 고통과 번뇌, 감정에서 굳이 벗어나야하나..? 
- 어둠이 있어야 빛이 있고, 심장 박동에도 펄스가 있는데 고통과 번뇌가 있어야 행복도 있는 거 아닐까. 그 어느 것에도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뛰지 않는 심장이랑 다른 게 무엇인가? 뿌라끄리티일 수 밖에 없는 인간인데 동요하고 흔들리는게 무슨 문제가 되는가 오히려 자연스러운 거 아닌가? 사마디의 상태에 이르고자 하는 것 또한 어떤 형태의 집착과 욕망 아닐까?
 
 
 
 
하 다써놓고 보니까 파탄잘리가 날 보고 비웃는거 같다...
 
야 너 어차피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해탈은 못 하고
이걸 궁금해하면 할수록 답도 없는 질문들의 굴레 속에서 고통받을 거임.
근데 너가 느끼고 생각하는 거 어차피 다 있다가도 없어질거라 별 의미도 없음. 니 존재마저도.
그러니 그냥 마음 편하게 먹어. 포기하면 편해.
너에게도 세상에게도 너무 많은 걸 기대하지마.
그냥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고 되는 만큼만 하면서 그 상태에 만족하면 돼.
 

아씨 근데... 너 좀...뭔가... 별로야...

1인칭으로 여기저기 적극적으로 세상에 있는 것들에게 내 마음 쏟아 일하고 사랑하고 배우며 살고 싶은 나에게 3인칭 관찰자로 이래도 흥 저래도 흥 하면서 살라는 것 같으니 힘이 빠진단 말이야.


쌤, 쌤이 나눠주고 싶으셨던 건 이런 게 아닐텐데 죄송해요ㅋㅋ
저는 무엇을 놓치고 있는 걸까요.
어느 굴레에 갖혀 빙빙 돌고 있는 걸까요.
 
분명 아사나할 때 느껴지는 것들, 선생님께서 해주시는 한 마디 한 마디는 꽤 명쾌하고 잘 받아들여졌는데
이렇게 전체적으로 오버뷰를 딱 하니까 오히려 길을 잃은 느낌인데 이거 마자요..?
요가도 멀리서 봐야 예쁜건가?

안먹어어ㅓㅓㅓ


다 써놓고 보니 뭔가 입 꾹 닫고 밥 안먹겠다고 고집부리는 애기 같은데요.
제가 밥이 싫어서 이러는 건 아니구요.
나 요가 좋아... 너무 좋아...
근데 그냥 지금은 이게 신기하고 재밌어서 입에 넣기 전에 이리저리 조물닥거리면서 만져보고 싶어서 그래...ㅎㅎ